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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세 가지 길, 죽령, 조령(문경새재), 추풍령

여행

by 사람조아 2021. 8. 2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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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맥은 경상도와 다른 지역을 나누는 자연 장벽. (사진1)

소백산맥을 통과하기 위해 3개의 루트가 만들어짐.

각각 좌로, 중로, 우로인데 산을 넘어가는 고개를 령(嶺)이라고 함. (사진2)

하나하나 살펴보겠음.

우로는 제일 오래된 길. 이쪽으로 가다가 넘는 고개는 죽령(竹嶺)

신라 아달라 이사금 때 죽죽(竹竹)이라는 사람이 개척(158년)해서 그런 명칭이 생겼다는 전설이 있음.

고구려가 리즈 시절(장수왕)에 이 지역까지 남하해서 신라와의 국경선이 형성됨. 신라 진흥왕이 소백산맥 너머 고구려 영토까지 치고 올라가서 단양 신라적성비를 세움.

평강공주의 옆지기 온달 장군이 바로 이 지역을 되찾겠다고 출정했다가 온달산성(충북 단양 소재)에서 전사.

단, 온달 장군이 사망한 곳은 <삼국사기>에 아단성이라고 나옴. 아단성이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이냐 서울 광진구의 아차산성이냐를 두고 아직도 논쟁 중.

가장 오래된 루트고 영주, 안동 지역에서 가까워 그쪽 사람들이 많이 이용했을 것 같지만 험한 산길을 구불구불 돌아가는 우회로라 오히려 덜 이용.

중로는 조선 시대에 제일 많이 이용한 조령(鳥嶺)을 넘어가는 루트.

조령산의 고개라 조령이지만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의미로 더 잘 알려짐. 그렇다고 수천 미터 고지는 아니고 해발 1,017m. 다른 명칭은 '문경새재'.

걸어서 통과하기에는 너무 험한 지역이라 방어에는 최적인 전략 요충지. 임진왜란 때 기병을 싹싹 긁어모은 신립 장군이 왜군 선봉을 평지인 충주 탄금대가 아니라 왜 험준한 조령에서 막지 않았냐고 명나라 장수 이여송으로부터 디스당함.

임진왜란의 충격으로 숙종 때 3개의 관문(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을 설치. 주흘관 뚫고 들어오면 그다음에 조곡관, 조곡관도 통과하면 조령관이 버티고 있는 것. 그러니까 1~3차 방어벽을 구축한 셈.

조선 시대에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보러 갈 때 애용.

죽령, 조령, 추풍령 중에서 조령, 즉 문경새재를 넘어가는 길을 제일 선호했던 이유는 추풍령을 넘어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으로 가면 죽죽 미끄러지는데 문경새재를 넘어가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게 된다(문경 聞慶)는 미신 때문이었다고 함.

군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믿지 않...

마지막으로 추풍령(秋風嶺)을 통과하는 좌로.

가을바람 고개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가졌고 해발 221m로 3개 중 제일 낮음.

조선 시대에는 이용 빈도가 떨어짐. 당시 주요 도로는 부산에서 낙동강을 끼고 대구, 상주, 문경을 거쳐 충주로 가는 루트. 추풍령은 인근에 강이 없어서 물자 이송이 불편해 그냥 외곽 우회로 취급을 받음.

그러다가 1901년 일제가 착공한 경부선이 상대적으로 평지인 추풍령을 통과하게 되면서 근대 이후에는 제일 중요한 교통의 요지가 됨. 경부고속도로와 4번 국도도 추풍령을 통과.

경부고속도로 기준으로 보면 딱 서울과 부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 추풍령 휴게소는 제일 처음 생긴 고속도로 휴게소.

늘 그렇지만 '걸어서 세계 속으로'가 아니라 '집에서 세계 속으로'이기 때문에 죽령, 조령, 추풍령 다 안 가봤음. 사실 직접 걸어서 가볼 기회가 별로 없기도 함. 페친들은 도보로 가보셨는지? 올해 아니면 내년에 꼭 내 두 발로 넘어가보고 싶음.


- 이 글은 Kim Jeongho 님 페이스북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https://www.facebook.com/1015006661/posts/10223665126268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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